Der arme Aschenbach
꼬리물기의 《Canopy Serpentine》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본문
꼬리물기는 zzzaam에서 꼬리를 물어 알게 된 밴드였다. 작년 겨울에 zzzaam 공연을 보고 여운이 너무 남아서 당시 공연 영상을 보고 싶었고, 공연 당시에 무대 앞쪽에서 영상 촬영하는 걸 목격했었기에 유튜브에 있을 거라 확신하고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ready4d 채널에 올라와 있었다. 실제로 본 것과 차원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내 여운을 달래주긴 하였다. 여운이 어느정도 가신 후에 다른 영상들을 구경하는데, 특히나 눈에 들어온 영상이 꼬리물기의 공연 영상이었다.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한 야외 공연이었는데, 내가 영상을 볼 때는 한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의 가을날씨가 확 풍겨져서 느껴질만큼 현장의 분위기가 잘 담긴 영상이었다. "날씨가 많이 좋아졌네요"라고 말하는 Tommy와, 기타를 던지는 김기민과, 콩콩 뛰며 머리를 흔드는 어떤 소녀의 뒷모습이 나에게 너무 인상 깊었던 것이다. 단지 분위기만 좋았다라는 게 아니라, 곡들도 너무 내 취향이라서 바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왜인지 꼬리물기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던 건 그 후로 며칠 되지 않았고, 나중에 가끔씩 꺼내 듣겠거니 하며 플레이리스트 목록에서 점점 아래로 밀려나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근데 스포티파이는 내가 며칠 들었던 걸 안 잊어 먹고, 꼬리물기의 정규 1집이 발매된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지나쳤을 법도 한데, 앨범커버가 예뻐서 들어나보자 하는 마음으로 재생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부터 두 달 내내 이 앨범만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For screening"이 좋아서 그것만 반복해서 듣다가, 갑자기 "아침을 먹는 새"가 머리에서 희한하게 자꾸 맴돌길래 또 이것만 반복해서 듣고, 그러다가 또 다른 노래가 생각나고... 하다가 이 앨범 전체가 좋아진 것 같다. 또 이 앨범이 segue 형식이라 한 곡만 반복해서 들으면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 앨범 전체로 들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게 밴드 이름이랑 관련해서 의도한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앨범 설명에서도 곡 순서대로 들으라고 한 걸 찾아보면서 이제 봤다.
사실 이 앨범이 올해 2월 초에 발매되자마자 완전히 꽂혀서 한달 내내 듣다가 리뷰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게 2월 말 쯤이었다. 그러다가 겨울방학이 다 지나가버려서 어느정도 써 놨다가 임시저장을 해놨었는데, 난 티스토리 임시저장 기간이 90일인 줄 모르고 계속 방치해뒀다가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이어 쓰려고 하니 없어져버렸다. 날라간 글에서는 내가 "요즘 김기민 씨가 PCR에 주력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 라는 문장을 썼었는데, 주력을 두고 있는 것보단 주력을 다 하고 있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그 당시에 꼬리물기에 빠져서 나는 공연만 기다렸고, 인스타에 올라온 앨범 발매글에 공연이 기다려진다고 댓글까지 썼는데, 지금 보면 내 댓글에 당분간 꼬리물기 공연은 없을 거라고 알려주지 않은 게 미울 정도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연을 꽤 하던 밴드였는데, 정규 앨범을 내고 공연을 안 할 줄 몰랐다. 이 앨범 이후로 아무 소식이 없는 게 이상해서, 김기민 계정을 좀 뒤져봤는데(밴드 계정에는 그런 뉘앙스가 전혀 없었음ㅜㅜ), 뭔가 정규 1집을 내겠다는 약속 속에서 숙제처럼 지니고 있었고, 완벽한 1집을 만들고 싶었지만 잘 그렇게 되지 못하였고, 그래서 계속 미루다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 발매를 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내가 납득 가능하게 마음대로 해석한 거임).
밴드 이름이 ‘꼬리물기’인 만큼 정규 앨범을 segue 형식으로 구성한 건 나름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Pink Floyd의 The Wall이나 Billie Eilish의 1집처럼 정교하진 않았고(내가 처음 접한 segue 형식의 앨범들이다), 뒷 트랙의 앞부분을 앞 트랙 끝에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한 듯한 부분에서는 어딘가 급하게 마무리하려 했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 김기민이 새로 시작한 밴드 PCR의 데뷔가 올해 1월 1일이고, 이 앨범 발매가 2월 초인 것을 보면, 꼬리물기의 숙제를 얼른 해치우고 PCR에 전념하고 하는 의도도 보인다. 이렇게 보니 꼬리물기는 1집을 끝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쉽지만, 오아시스처럼, 바이바이배드맨처럼 언젠가 다시 재결합을 해서 공연을 하는 걸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글이 날라가서 그냥 쓰지 말까도 했는데, 아무래도 올해 초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zzzaam의 4집 이후로 어떤 앨범을 들어야 할지 많이 방황했었는데, 《Canopy Serpentine》가 그 방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가사도 너무너무너무 내 취향이라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4월 중순에 바이바이배드맨이 7년만에 새로운 앨범을 내서 그걸 듣느라 다시 잘 안 듣게 되었긴 했지만,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듣는 애정하는 앨범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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