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arme Aschenbach
슈게이징은 좋지만 파란노을은 싫어 본문
때는 2021년, 나는 한창 홍대병에 걸려서 남들은 안 듣는 음악을 듣고 싶어했다. 벅스의 최신발매곡 탭을 스크롤하며 꽤 멋진 앨범 커버가 보이면 무조건 듣기 시작했고, 선별을 통해 내가 들을 노래를 발굴해냈다. 이런 식으로 나는 7월 5일에 나온 TRPP의 첫 앨범을 듣게 되었고 몇 달 동안은 그 앨범만 들었다. 앨범이 질릴 때쯤, 갓 만들어진 밴드라 다른 앨범은 없고 해서 같은 장르의 음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서야 나는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고, 한국의 슈게이징 밴드를 나무위키로 찾다가, 파란노을을 알게 된 것이다.
듣기 전에 조금 찾아봤는데 너무 극찬이 많길래(나무위키 읽어 보면 찬양이 따로 없음, 유튜브 댓글에서는 국내외 찐따들이 좋아서 죽을라 함) 기대하면서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앨범을 재생했다. 근데 웬걸... 꾸역꾸역 끝까지 다 듣긴 했지만 솔직히 듣다가 이어폰을 확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이후론 한 번도 듣지 않았는데, 최근에 국내에서 “락 붐”(;;)이 일어나면서 파란노을도 조금씩 언급되더니 내 심기를 건드렸다. 또또 하도 극찬하길래, 내가 처음 들을 당시에는 슈게이징이라곤 TRPP 밖에 듣지 않아서 파란노을의 노래가 별로라고 느껴졌나 하며 2년 만에 다시 들어보았다.
아... 근데 난 또 찾아서 들을 것 같진 않다. 그 이유는
a. 일단 노래가 너무 정신 사납다. 슈게이징이 그런 느낌의 장르인 건 알다만, 그냥 이건 무지성으로 정신 사나운 느낌이다. 헤비메탈 바에 가서 서너 시간 있었을 때도 시끄럽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렇게 느끼면 말 다했다. 처음 들을 때는 “슈게이징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하면서 슈게이징이 나와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아티스트의 슈게이징을 많이 들어보고 즐겨 듣는 와중 이번에 다시 들어보니 그냥 내가 파란노을이 별로라고 느끼는 것 같다. 노이즈의 볼륨이 너무 크면서도 공백이 너무 없어서 뇌신경을 계속 건드리는 느낌이다. 파란노을 본인이 앨범 설명으로 노래가 많이 시끄러우니 볼륨을 낮추라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나한테는 전혀 유쾌하지 않을 뿐이다.
b. 가사가... 너무 별로다. 너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찐따스럽다. ‘청춘반란‘이라는 노래에서 절정을 달한다. 내가 찐따 감성이라면 무조건 다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신세이 카맛테짱의 ‘치리토리’는 내가 라이브 공연 영상 조회수를 살짝 과장 섞어서 500회는 늘렸을 정도로 빠졌던 찐따 감성 노래이다. 하지만 파란노을의 노래는 찐따 "감성"이 아니라 그냥 정말 찐따가 쓴 노래 같아서 별로 안 듣고 싶다. 괜히 포스트락 갤러리에서 찐따 같다며 욕한 게 아니다. 외국 놈들이야 한국어를 모르니깐 좋아할진 몰라도, 나는 내가 굳이 노래를 들으면서까지 찐따의 일기 내용을 알아야 하나 싶었다.
c. 목소리가 별로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d. 천재 호소인인 것 같아 싫다. 영화랑 애니에서 대사 샘플링 한 걸 노래 중간중간 집어 넣다던가, 활동명은 노래 가사에서 따온다던가, 앨범 커버는 영화를 오마주한다던가, 정교한 거짓을 들려주기 위해(?) 가상악기를 사용한다던가 등등... 창작인으로서 어리숙하다고 느껴지고 겉멋이 잔뜩 든 것 같아 개인적으로 거부감 든다. 또 무슨 앨범 만드는 데 이것저것 의도는 많아서 이걸 다 앨범 설명이나 블로그에 구구절절 쓰는 게... 전혀 프로답지 않앗!
파란노을에 대해 더 찾아보던 중, 조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파란노을이 제일 좋아하고, 파란노을이 손꼽아 좋아하는 애니를 내가 내가 유일하게 모든 컨텐츠를 챙겨본 애니라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시안 글로우의 앨범이 파란노을의 앨범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만들어진 앨범이라니. 그냥 파란노을의 취향이나 관련된 것들은 나와 너무 교집합이지만 정작 파란노을의 노래는 싫어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취향 겹치기도 쉽지 않은데 그 사람의 노래가 취향이 아닌 점은 참 아쉽긴 하다. 그나마 세 번째 정규앨범 ‘After the Magic'은 위에서 말한 네 가지가 훨씬 두드러지지 않아 2집보다는 낫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2집도 물론 앞으로 다시는 들을 것 같진 않으며,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슈게이징/포스트락 플리를 들을 때 파란노을이 있으면 바로 다음 노래로 넘겨버리는 것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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