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arme Aschenbach
잠 들기 전에 듣는 zzzaam의 《빛나》는 정말 빛나 본문
사실 이 글은 앨범 리뷰를 가장한 공연 리뷰이다.
할 일이 많지만 다 제쳐두고 일단 서울행 기차를 탔다. zzzaam의 4집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보러.
잠은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 스포티파이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날 발견하게 된 '착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용자가 만들어 놓은 '이따위 엉터리 천국은 나도 만들겠어'라는 플레이리스트. 설명란에는 '좋아하는 국내 포스트락 슈게이징 들으면서 시나 읽어요..'라고 되어 있다. 이 플레이리스트의 대표사진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나오는 장면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그의 다른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이 '김행숙'으로 지어진 것도 있었다. 아무튼 내가 찾은 플레이리스트 트랙에는 TRPP, 이랑, 이민휘, 언니네 이발관, 공중그늘의 노래가 있었고, 이건 정말 나를 위한 플레이스트구나 싶어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유럽을 갔다 온 후 할 일 없는 겨울방학에 시작하게 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과외를 마치고 깜깜한 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이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데, 어떻게 노래 하나하나가 다 좋은지(물론 파란노을은 건너 뜀)... 몇 달 동안은 그 플레이리스트만 들었다. 7시간 21분이라는 런타임 중에서도 내 귀에 유독 들어온 노래는 잠의 노래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앨범을 다 들어볼 생각은 안 했고, 그냥 앨범이 다 2023년 발매로 나와 있길래 신생 밴드인가보다 했다.
그러다가 9월 초쯤 스포티파이에서 알려주는 회원님을 위한 최신 발매곡이었나 뭐였나 거기에 잠의 4집 앨범이 뜬 것이다. 들어봤는데 미친. 바로 인스타 팔로우까지 하고 잠의 노래를 모두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인스타를 팔로우하다 보니 바이닐 판매 정보도 알게 되고, 고민도 없이 샀다. 중간에 서울레코드페어나 먼데이프로젝트 공연도 있었는데 내가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었으면 무조건 갔겠지만... 등록금 낼 돈으로 기차왕복값 내면 되지! 라고 생각한 몇 년 전 나의 생각을 조금 후회하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라 온 중간고사 시험 후 토요일 공연 공지 게시물. 게시물을 읽어보니 그때서야 알았다. 2000년에 1집, 2002년에 2집, 2004년에 3집을 내고 20년 만에 4집을 발표한 것을... 너무 놀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한 밴드라니. 스포티파이에 있던 연도는 음원으로 재발매하느라 표기가 그랬던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의 '근본'을 느끼고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하다 말고 바로 예매했다. 장르 특성 상 남자친구한테 같이 가자는 권유는 하지 않았다. 선예매 후통보였다. 그리고 어제 작년 이맘 때처럼 혼자 서울 땅을 밟은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민수의 공연을 보러 서울에 갔을 땐 얼마나 서울이 크고 무서웠던지. 그러나 그 이후로 김사월 공연도 보러가고 하니 어제는 왜인지 그런 서울포비아(...)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무튼, 수서역에서 내려 3호선을 탔고, 경복궁 역에서 내려 근처 던킨에서 도너츠를 두 개 먹은 후 10분 걸어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도착했다. 그 공간의 지하 1층 팡타개러지로 내려갔고, 예매확인을 하고 잠의 병따개를 받았다. 일찍 들어가서 서 있는데 들려오는 잠의 4집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된 잠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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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쁘다고 예매 취소하고 안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만약 그랬다면 2024년 최대의 후회가 되었을 것이다.
1) 그 작은 공연장을 빈틈 없이 꽉 채운 소리들. 그 공간에 있는 모든 공기 분자들이 열정을, 최선을 다 해서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그게 소름이 돋았고, 너무 좋았다. '잠결'에 있는 것 같았다. 내 고막이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가 컸는데, 그 안에서도 멜로디는 다 느껴졌고, 나는 하나도 시끄럽지 않고 행복했다. 오빠 데리고 왔으면 어쩔 뻔 했지... 싶으면서도 반대로 내가 정말 슈게이징을 좋아하는 게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슈게이징을 더 사랑하게 됐다.
2) 작년에 갔던 민수 공연도 스탠딩이었는데, 내가 그런 공연도, 스탠딩도 처음이라 뭔가 몸을 움직이는 게 부끄러워 공연을 귀와 눈으로만 즐겼다. 그러고 싶어도 그땐 무대 앞 쪽에 사람들로 꽉차서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근데 그때 공연을 본 다른 사람이 뒷 공간에서 춤추면서 즐겼다는 블로그 후기글을 보고, 나도 이젠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제대로 즐기기로 했다. 다행히 몸을 흔들 공간도 충분히 있었고, 움직여지는대로 머리와 몸을 흔들었다. 과외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 사람 한 명도 없는 환승 정류장에서 잠의 노래를 들어도 몸이 절로 움직였는데, 라이브로 들으니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3) 밴드 멤버들이 너무 멋졌다. 너무 멋져서 동경심이 들었다. 밴드를 보면서 뭔가 멋지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는데, 딱 잠에게서 너무나도 큰 감정을 느껴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악기에 문외한이라서 몇몇 행동들이 뇌리에 꽂혔다. 연주하다 말고 스피커 쪽으로 몸을 돌려 연주하는 거. 찾아보니 피드백이라고 하는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기타 끝에 달려 있는 막대기로 연주하는 것. 이것도 찾아보니 트레몰로 암이라고 한다. 그리고 발 앞에 있는 패달 보드를 발로, 손으로 조정하는 것.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겐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다른 공연에서도, 학교 밴드동아리 공연에서도 무수히 봤지만 이런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까이 봐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ㅋㅋ. 그리고, 내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그들이 신고 있던 컨버스, 셔츠, 청바지가 너무 간지 나 보였다... 그게 얼마나 뇌리에 꽂혔으면 에어포스 검정만 신고다니던 내가 오늘 짱박혀 있던 컨버스를 꺼내 신었다.
4)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답게 멘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민수나 김사월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땐 이 노래를 왜 만들게 되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새롭게 알게 되어서 그걸 듣는 묘미로도 공연을 즐기기도 했는데, 잠의 공연에서는 거의 연주의 향연이었다. 잠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노래들이 계속 이어지는 점은 좋았다. 오히려 신비주의 같아서 궁금증이 더 생겼고, 내가 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5) 기타 및 보컬을 담당한 박성우분을 보며 신세이 카맛테쨩의 노코가 떠올려지기도 했다. 뭔가 느낌이 비슷했다...
6) 나는 내 기준에서 좋은 영화나 소설/시를 읽고나면 한동안 싱숭생숭해서 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그런 기분이 들거나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내가 정말 좋은 작품을 봤구나 라고 역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제도 그러했다. 공연이 끝나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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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을 거의 새고 아침 9시부터 봉사를 해서 너무 피곤했기도 했지만, 최고의 하루였다. 어젯 밤에는 잠의 4집 '빛나'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내일은 또 월요일이니, 이젠 잠에서 깨어나 할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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