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arme Aschenbach
도서관람; 임소라가 더 궁금해졌다 본문
작년 가을, 전남친은 대학 정기전을 뒤로하고 나와 대구에 놀러가기로 했다. 수성못에서 사람 구경을 하고 다음날, 브런치를 먹은 우리는 마땅히 할 게 없어 지난번 경주 데이트 때 책방에 간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또 책방에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난 조와 울들의 '미래파'와 임소라의 '수신확인'을 샀던 것이다. 신중하게 고른 두 권의 책이 예쁜 봉투에 담겨지니 기분이 좋았고, 그렇게 책방에서 내려올 때, 그 친구는 전자도서관이 활성화된 요즘, 책을 구매하는 것은 돈이 아까운 행동이며, 차라리 실물 책을 구매한다면 이런 책보다는 고전문학 소설을 사는 것이 그나마 더 가치있는 행동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더이상의 대꾸는 안 했고, 왜냐하면 여기에 대꾸해봤자 그 친구의 생각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며, 결국 우리는 이러한 결의 문제로 헤어졌다. 그 말만 안 했어도 책방에 갔던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때 샀던 두 책을 다 읽어본 지금, 그 짧은 시간에 그 두 책을 고른 내가 너무나도 대견하게 느껴질만큼 마음에 쏙 들기 때문이다.
사실 '수신확인'을 읽고 처음 느껴보는 신선함에 같은 시리즈의 '친구추가'도 이미 작년 겨울이 오기 전 구매해서 읽어 보았다. 최근 토마스 만의 소설집을 읽다보니 딱딱한 독어 번역체에 질려 산문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고, 다시 임소라를 떠올려 이제는 이 시리즈의 1권부터 읽어보자 해서 산 것이 '도서관람'이다.
계속 언급하는 '이 시리즈'라는 것은 임소라의 '거울 너머' 시리즈이다.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홀수호는 논픽션, 짝수호는 픽션의 형태이다. 이 정보는 도서관람을 사고서야 알았는데, 이미 읽은 '수신확인'과 '친구추가'는 4번, 6번이기에 나는 임소라의 픽션에 반했던 것임을 알았고, 읽으려던 '도서관람'은 1번이기에 혹여라도 임소라의 논픽션이 나와 맞지 않을까봐 조금 걱정되었다. 하지만 표지부터해서 튼튼한 내지 덕분에 책을 펼치려면 손에 힘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과, 남산도서관 챕터에서 문단이 한 줄씩 당겨져서 미관상 불편한 것 빼고는 이 책의 단점이라곤 없었고, 이 책을 읽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가치있다고 느껴질만큼 좋았다. 그리고 이제 임소라의 논픽션도 신뢰가 가기 때문에, 임소라의 모든 글을 읽으리라고 다짐했다.
서울시 내 도서관 10곳을 관람하며 관찰한 내용과, 드는 생각과, 떠올려진 에피소드와, 그곳에서 본 책에 대한 소개는 정말 사소했지만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책의 구조도 좋았다. 문단문단이 페이지로 끊어져 있어 다음 문단의 내용이 궁금해질 때, 그 궁금함의 지속 시간이 길어져서 괜히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각 도서관의 관람 내용 끝엔 그 도서관에 대한 별점이 있었는데, 과연 임소라는 이 도서관에 대해 어떤 점수를 줄까 하는 호기심으로 글을 읽었고, 어떨 때는 페이지를 넘겨 점수를 먼저 보고 읽을 때도 있었다. 임소라는 물론 책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어쩜 가는 도서관마다 읽었던 책이나 알고 있던 출판사 또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자주 발견하게 될까 했다. 내가 도서관에 가면 정말 모르는 책 투성이인데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임소라의 코스대로 서울의 도서관을 가고 싶어진다. 별점이 낮은 도서관이라도 나 또한 그렇게 느낄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최근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쯤 주말에 울산도서관을 갔는데 사람이 미어 터질듯이 많아서 1시간 걸려 간 곳을 1분만에 도로 나온 걸 떠올리면 임소라는 평일에 도서관에 들렀던 거고, 내가 서울에 가게 되면 그것은 주말이테니 내가 상상하는 관람은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뭐, 어찌 되었든 그건 그렇고, 읽을 책을 직전에 읽었던 책 속에서 등장한 책으로 잘 선정하는 나로서 '도서관람'은 나에게 아낌 없이 주는 책이기도 하다. 나중에 이 책을 참고하여 읽을 책을 고르도록 해야겠다.
날씨 좋은 날 버스에서도 읽고, 추석 날 할머니 댁에서도 읽고, 기숙사 책상에 앉아서도 읽고, 본가 침대에 누워서도 읽었다. 읽는 동안에는 시간이 빠르게 갔다. 9번째 도서관까지는 잘만 읽혔는데, 얼마 전부터 바빠지기도 하고 괜히 손이 안 가서 오랫동안 10번째 도서관을 안 읽은 채 놔두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탄 것 덕분에 다시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커져버렸고, 챕터도 하나밖에 안 남았겠다, 읽던 책을 빨리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후딱 읽어버렸다. 산문보다는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글을 읽고 싶어진 것이다. 이번 독서의 마무리는 조금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본가에 가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챙기며 엄마한테 빌려줄 것이다. 왠지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 이젠 한참 소설을 읽을 것 같고, 또 다시 소설이 질리면, 또 다시 임소라의 글로 돌아올 것이다.